미니멀리스트 살림러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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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마마 Life/Diary

미니멀리스트 살림러의 꿈

by 썬마마 2020.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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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미미집 어디있어?"

아...

미미집....

버렸는데.....

"미미집 없어..."

"아니야 찾아봐.찾아보면 있을꺼야."

아이는 이내 울먹울먹하더니 대성통곡을 시작한다.

 

여기서 미미집이란, 선물받은 인형(미미)이 담겨져 있던 플라스틱함.

별로 갖고 놀지도 않고, 수납함에도 담기지 않아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플라스틱을 조용히 창고에 넣었었다.

몇달이 지나도 찾지 않자, 당연스레 버렸는데..

아뿔싸..버린지 몇개월은 더 된 그걸 찾다니.

 

이것뿐만이 아니다, 아이 어릴때 한보따리 선물받은 인형들 중에서도

잘 안갖고 놀아서 누구 줘버리고, 기부하고 그런 인형들을

갑자기 찾는다.

책은 또 어때?

아주아주 아기때 읽었던 책이 문득 떠올랐는지, "엄마 그 책 어딨지?" 하고 물어보면,

순간 등골이 오싹해진다.

아 망....

그거 없는데..라고 말하는 순간 난 역적죄인...

(그렇게 야금야금 정리해도 아직도 인형은 10개가 넘고, 책은 천권을 넘어간다.

당연히 아이가 좋아하는 건 남긴다.)

세돌도 안된애가 기억력이 왜 이렇게 좋니, 아직 기억할 것들이 별로 없어서 그런거니..

 

최근에 창고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나의 헤드랜턴.

남편과 결혼전에 야간 등산때 사용하던 것이다.

그 당시 제법 비싼 브랜드로 사서 몇 번 사용 후에, 결혼 후에는 한번도 못썼다.

앞으로도 야간 산행 할 일은 없을 것 같아서 당근마켓에 올렸더니,

바로 구매자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걸 판다는 얘길 들은 남편은

"그걸 왜 팔아. 나 그거 쓸꺼야. 보일러실 수리할 때도 쓸수 있고, 또 야간 산행 할 수도 있잖아."

흠,

보일러실에 그대가 수리할 일이 뭐가 있는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보일러실을 수리할 일이 몇번이나 있을 것이며,

아니 손전등 있잖아. 핸드폰 손전등도 잘쓰면서...

"여보 진짜 필요하면 그때되서 또 사면 되지 않을까? 내가 야간산행을 할 일이 언제 또 있겠어?'

"필요할 때 다시 사면 얼마나 아까운데~"

하아...하긴 남편은 자기방 서랍 구석구석에 온갖 박스를 모아놓는 사람이다.

옛날엔 온갖 포장완충재도 모아놨었는데, 내가 야금야금 갖다 버렸다.

시댁에 쌓여있던 초등학교때부터 모아놨다던 컴퓨터 잡지는 결국 정리하면서도 엄청 투덜거렸었다.

이거 팔면 돈 될거란다...이건 지금 구할 수도 없는거라며..

(그래 그럼 팔아봐 한번..)

남편 전공책들은 내가 만난뒤로 한번도 펼쳐 본적이 없고,

매번 이사할때마다 창고에 처박혀있지만 이건 못버린단다. 언젠간 볼 일이 있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버리려고 모아둔 내 책은 자기방에 갖다놨다.

자기가 볼거래..

내가 날 만난 이후 당신이 책 보는게 손에 꼽는데...

이제와서 그렇게 오래된 책들을 볼리가.....

창고도 두개층을 비워놨더니, 거기다가 커다란 포장완충재를 갖다 놨다.

저렇게 큰 포장완충재는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지고 있어야 한단다..

할말하않이다.

 

못버리는 남편과 모든 물건에 애정을 주는 딸과 살려니

참 복잡 미묘한 맥시멀리즘과 미니멀리즘의 어정쩡한 중간에 위치한 삶을 살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나는 뭐가 많으면 불편한 사람이다.

맥시멀리스트인 친정엄마는 내가 자취할때부터 항상 뭘 바리바리 갖고 와서 내 방과 냉장고를 꽉꽉 채워주셨다.

난 아직도 냉장고가 꽉 차있으면 불안하다.

빨리 먹어야 할 것 같고,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저기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괜히 찝찝하다.

"가져가면 다 먹게 되있어." 라고 말하시는 친정 엄마는 매번 우리가 친정방문때마다 아이스박스를 3개씩 꽉꽉 채워서 보내주신다.

감사하긴 하지만, 난 그 냉장고를 비울때까지 내가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은 못먹고 냉장고 파먹기만 하게 된다.

 

최근에 옷장정리를 하다보니 내 옷의 80프로, 아이 옷의 90프로는 친정 엄마가 사준 것임을 알게됐다.

난 참 취향도 없던 사람이구나.

그나마 기부할만한 옷을 옷캔에 3박스 보내고 나니, 내 취향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금 당장은 옷을 구매할 계획이 없지만,

이 옷들을 열심히 입고 나서 또 옷을 구매할 때는 옷 한벌 한벌을 신중하게 내 취향에 맞춰 구매할 것 같다.

 

요즘 시간 날 때 즐겨보는 컨텐츠는 미니멀리즘과 살림에 관한 것들이다.

처음에는 미니멀리즘 살림인줄 알고 챙겨봤는데,

보면 볼수록 미니멀리즘과 살림을 잘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얘기 인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살림을 잘하는 사람의 삶은 물건이 많은 맥시멀리스트에 가깝다.

다양한 조리도구, 때에 맞춘 식기류, 각종 패브릭, 아이의 원목장난감들..

 

하지만 살림을 잘하는 사람의 삶이 미니멀해보이는 것은,

그 사람의 취향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릇이 많아도, 한가지 취향으로 통일감이 있다.

패브릭이 많아도 지저분해보이지 않는것은, 인테리어 센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패브릭을 관리할 수 있는 성실함도...)

 

아이에게 미니멀리즘을 강요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물건을 원하고,소유하고,실컷 느껴본 자만이 결국에는 자기 취향과 미적센스를 가지게 된다.

일도 인간관계도 집안일도 미어터지고 부딪치고 얻어맞아봐야,

지금 내가 가지는 단순함의 여백이 감사하고, 진짜 내 것들만 골라서 즐길 수 있게 된다.

 

아이에게는 다양한 것들을 접할 권리가 있다.

다양한 색깔, 다양한 모양을 접하고, 창의력을 확장시킬 수 있는 장난감을 실컷 만지고 던지고 발로 차면서 놀아야 한다.

그 과정이 아이에게는 뇌계발이고 정서발달이다.

자연으로 나가서 자연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지만, 하루종일 나가 있을 수는 없으니,

집에서도 이것저것 접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내 아이는 짧은 순간도 자라고 있다.

너무나 귀한 이 아이의 순간 순간을 엄마가 미니멀리스트를 한다고, 기회를 빼앗을 수는 없다.

 

초등학교 3학년, 내가 그렇게나 좋아하던 비비인형을 한꺼번에 다 버린다고 했을때,

엄마가 진짜 다버릴거냐고 하나만 남겨놓는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던게 아직도 생각이 난다.

실컷 욕심냈었고, 소유했었고 실컷 즐겼기에 버리는게 미련이 없었다.

내가 그랬듯이 아직 어린 내아기는 아직 한동안 물건을 소유할 시간이 필요하다.

미미집 없어졌다고 서글프게 우는 아이를 안고, 진심으로 사과했다.

"미안해, 엄마가 다음에 버릴때는 꼭 써니한테 물어보고 버릴께."

 

정리하는 것이 이렇게 어렵다.

누군가는 물건에 너무 정을 주고, 누군가는 물건의 가치에 대해 높은 점수를 매긴다.

처분하는 것은 얼마나 귀찮은지..

중고거래,기부,재활용...

사는데 에너지와 시간을 쓰고, 관리하는데 또 에너지와 시간을 쓰고, 처분하는데 또 쓴다.

미니멀리즘을 지향하는 살림러지만, 미니멀리즘이 불가능한 삶을 사는 나는 새로운 결심을 한다.

 

물건 사지말자.

안사고 쓰기만 하다보면, 언젠가는 비워지지 않을까?

 

아이는 지금있는 장난감들 외에도 끈 하나 돌멩이 하나가지고도 잘 논다.

가끔 아이의 상상력에 깜짝 놀란다.

오늘 아침은 냄비 받침을 쭈욱 꺼내더니 징검다리를 하고 놀았다.

 

생필품은 대체할 수 있는 반영구적인 물건들로 대체해본다.

최근에 환경과 건강에 관한 이유로 안쓰는 아이 손수건을 잘라 와입스를 만들어봤다.

여러모로 참 좋더라.

이렇게 무언가 사기전에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이 없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이젠 물티슈 대신 행주와 걸레를 열심히 빨고 소독하려고 생각한다.

얼굴에 바르는 제품도 하나로 줄이고, 샴푸 및 바디 샴푸로 올인원 비누바로 바꿀까 생각중이다. 

행주티슈,걸레티슈,물티슈등을 잔뜩 쟁여뒀던 창고 한구석이 비어가는 걸 보니 속이 시원하다.

 

미니멀리즘, 제로웨이스트, 돈 아끼기가 알고보면 같은 선상에 있었다.

결국 내 살림이 향하는 방향은 이쪽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조금씩..10년,20년에 걸쳐 미니멀리즘을 하고자 한다.

아이책은 당분간 늘어나겠지? 그건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나중에 아이가 독립해 나가면, 남편이랑 이른 은퇴를 하고 정말 작은 집을 가서 살아보고 싶다.

각자 패드 하나와 기내용 여행가방 하나씩만 들고 여행을 언제든 떠날수 있는 그런 삶을 살 것이다.

남편 방의 빈 박스들도 그때까진 치워져 있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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