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어서, 아이 등원도 안시키고 같이 오전내내 잠을 잤다.
아이가 일어나더니
“엄마, 나 어린이집은 안가도 아침은 먹으면 안될까?”라고 물었다.
(대체 넌 나에게 얼마나 낮은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냐?)
어제는 아이를 등원시키고, 나서 오전내내 자고 오후내내 핸드폰 하면서 뒹굴뒹굴했다.
그리고 아이 하원 후, 남편의 회식을 핑계삼아 딸과 둘만의 회식을 진행했다.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했으니 배도 별로 안 고팠는데...
아이는 파스타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내가 물어봐놓고, 아이의 선택을 무시하면 안되기에 파스타 먹으러 갔다.
오늘은 기분도 그냥 그렇고, 평소에 가던 파스타 집 말고 길 건너 파스타집에 가보자~
음, 자주 안가던 그 파스타집에 가서 메뉴판을 보다가 놀랐다.
아, 내가 여기 자주 안오던 이유가 있었구나.
요즘 파스타 가격이 왜 이렇게 비싸진거지?
파스타 하나에 16천원.
파스타 하나만 시키면 양이 적을까봐 시킨 알리오올리오에 스프라이트 하나 추가.
아이는 조금만 먹고 배가 부르다 했고, 난 꾸역꾸역 먹다가 결국 파스타는 포장했다.
아이는 카페에 가자고 했다.
(엄마랑 데이트 하면 카페는 무조건 가는 줄 아는 다섯살)
그래, 엄마 기분도 별론데 가성비 카페 말고,
한번도 안 가봤던 새로운 카페에 가보자하고 근처에 예쁘게 생긴 카페에 들어갔다.
아이는 팥빙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난 배가 불렀지만, 나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는 훌륭한 엄마이니 팥빙수를 주문했다.
팥빙수 몇 숟갈 먹던 아이는 너무 배가 불러서 그만 먹겠다고 했다.
또 팥빙수의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배불러,배불러 하며 배잡으며 먹는 건 내 몫이다.
(그냥 남기고 가기에는 카페 팥빙수의 가격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렇게 내가 오늘 기분이 영 안 좋아서 쓴 비용은 총 49,600원.
아 기분이 더 안 좋아졌다.
그냥 집에서 딸래미 좋아하는 미역국에 밥이나 말아 먹일걸.
난 배도 별로 안고팠는데…
이렇게 가끔 호르몬은 비싼 값을 하며 돌기도 한다.
누가 괴롭혔으면 시발비용이라는 핑계라도 되지. 이건 그냥 이름도 없는 비용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아이를 등원시키자마자
(오늘도 그냥 끌어안고 더 잘 뻔 한걸, 정신력으로 일어났다.)
언제 누구에게 받은지 모를 스벅 쿠폰을 들고 스벅으로 갔다.
커피가 딱 다섯모금 몸에 들어가자 다시 의지가 돋기 시작한다.
아, 역시 이거였어.
호르몬엔 카페인이구나.
호르몬엔 약발이구나.
몇 천원의 커피 한잔이면 됐을 일을, 어제 5만원이나 썼네!
지난 이틀동안 고민을 많이 했다.
나 대체 왜 이러지?
할 일이 없어서 그런가?
뭔가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하나?
돈도 못 벌면서 이렇게 늘어져만 있어도 되나?
강박증과 호르몬이 합쳐진 무기력은 나를 끝없는 어둠으로 끌고 갔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회사 다니면서 또래보다 많은 월급 받으며 살 때도, 간간히 이럴때가 있었다.
문제는 어떠한 사건이 아니라 호르몬이었을뿐.
내가 지금 삶이 너무 평화롭고 이벤트가 없어서 호르몬의 영향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 뿐.
늘어질 수 있는 내 환경덕에 며칠동안 늘어져도 큰 문제가 없었을 뿐.
모든 것이 감사한 날들이다.
꼴랑 내가 처질 일이 호르몬뿐이라는 것이.
그리고 오늘 느낀 것은, 역시 호르몬엔 카페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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