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승진 누락에 드러눕고 싶은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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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마마 Life/Diary

남편의 승진 누락에 드러눕고 싶은 아내

by 썬마마 2022.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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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나 승진 떨어진 것 같아ㅠ"

 

그 카톡을 받을 때, 난 김창옥 강사님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정말 말 잘하고 재밌게 하는 건 재능인가보다 하고 강의에 감탄하며 웃어대고 있는데, 

이 카톡을 받아들고나서부터는 마음에 쇳덩이가 던져진듯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번에 승진 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직하는 바람에 한 해 승진이 누락되기도 했었고, 이번에는 고과도 아주 잘 받았기 때문이다.

일단 카톡을 받고 나니, 남편이 얼마나 상심할지에 대해서 생각이 되었고 내 마음도 같이 우울해졌다.

 

 

 

 

일단 승진 누락은 회사 내 시스템상 문제가 있는 것으로 얘기가 되는 것 같은데, 

아마 발표를 번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대기업 인사팀이 일개 직원때문에,

자기들이 잘못한 것을 바로잡기 위해 사과하거나 번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적은 내가 본 바로는 없었다.)

 

사실 내가 해 줄 건 없다.

위로해줘봤자, 사실 그게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자기가 자기 감정을 가지고 바닥치고 다시 올라와야 그 분노와 억울함과 짜증이 어느정도 눌러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마음이 너무 힘들다.

나는 뉴스기사도 우울한 것을 보고 나면 며칠동안 마음이 무거운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공감력이 좋은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부정적인 감정을 잘 소화를 못시키는 사람이다.

그래서 드라마나 영화도 무거운것은 안본다.

신문의 사회면도 잘 보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과의 갈등도 그냥 회피하고 싶어한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육아서를 보다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도 아이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아이 몫이라고 한다.

아이를 키우다보니 그건 사실이다.

아이가 평생 살면서 부정적인 감정을 안갖게 할 순 없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해주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슬픔,상실감,억울함등을 얻는다면 

그 감정은 그 아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된다.

 

남편의 감정 역시 마찬가지다.

남편이 얼마나 마음아플지 신경쓰는 건 가족으로써 당연한거지만,

내가 이렇게 직접 당한 것처럼 너무 마음아프고 화나고 집안일도 못하겠고,

이런건 건강한 공감력이 아니다.

 

나는 살면서 사람들이 다 나 같을 줄 알았다.

우리 엄마도 나와 같았다.

만약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거나, 아니면 긴장할 일이 생기면

우리 엄마는 일단 밥부터 못먹고 그 상황이 끝날때까지 마음을 쓰셨다.

물론 그런 상황이 내게 도움이 된 건 하나도 없었다. 부담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데 크면서 주위를 살펴보니, 생각보다 나같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차가운 사람이라 공감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더 따뜻하게 공감하고 이해한다.

하지만 그 감정에 오염되지는 않는다.

자아가 건강하면 쉽게 부정적인 감정에 오염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의 승진은 크게 나와 상관이 없다.

(만약 회사에서 짤리게 된다면 그건 생활비와 연관이 있으니 문제가 있다.)

 

직장인들이 승진을 바라는 이유는 두가지다. 연봉인상과 능력인정.

난 지금 남편의 현재 월급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그래서 승진으로 인해 한 달에 몇십만원 오를 수 있는 데, 더 못 올랐다고 해서 화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남편이 승진이 오래 누락되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것도 아니다.

남편은 고과가 아주 좋다.

일처리 능력도 좋은 편이라 지금 남편의 상사도 해외 출장시에 남편을 데리고 가고 싶어서 매번 남편을 꼬신다.

 

그저, 직장인에게 진급누락이 얼마나 상실감을 주는지 알기에 남편의 마음을 생각해서 내가 마음이 무거울 뿐이다.

다만, 지금 그 무거운 정도가 너무 과하다.

솔직히 지금 그냥 펑펑 울면서 침대에 누워서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

그건 아니지않은가?

당사자인 남편이야 그러고 싶겠지만, 지금의 나는 아내로서 배우자의 승진 누락에 이렇게까지 마음 쓸 건 아니다.

 

지금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치유를 위해서이다.

글쓰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고 한다.

어차피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쥐뿔도 없는데, 그냥 내 마음이나 좀 가볍고 나라도 줏대있게 버티려고 쓰는 글이다.

 

오늘 저녁은 남편이 좋아하는 일식집에 가서 비싼 사케나 먹어야겠다.

맨날 짠테크 한다고 풀떼기만 먹이고, 기념일에도 마트 초밥이나 사다먹였는데,

오늘은 쾌락적인 자본의 힘과 알코올의 힘이 필요한 날이 될 것 같다.

오늘은 하고 싶은 말이 백만개여도, 입다물고 남편이 끝없이 욕하는걸 들어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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